잃어버린 커피를 찾아서
BB Letter #042 | 2022. 01.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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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안녕하세요! 윤서영 마케터(쿄쿄)입니다. 이번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의 주인공, ‘종이잡지클럽’의 김민성 대표님을 소개하려고 오랜만에 등장했답니다.
2년 전 합정동의 ‘종이잡지클럽’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민성님을 기억합니다. 관심사와 취향을 물어보시고는 3분만에 여섯 권 정도의 잡지를 펼쳐서 돌아왔습니다. 제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아티클을 정말 맛깔나게 설명해 주셔서, ‘와, 맞춤 큐레이션이란 이런 거구나!’를 뼈저리게 느꼈죠.
민성님과는 일과 일이 아닌 것에 대해 모두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얼마 전 스스로를 창작자에 가깝게 규정하는지, 기업가에 가깝게 규정하는지 물었어요. 양쪽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있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글은 순수히 즐기면서 쓰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민성님이 개인 계정에 올리는 글들이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읽히고자 하는 글이 아니라 순수히 써내려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글입니다. 어디부터 사실이고 어디부터 픽션인지 알기 어려운 글들, 어디선가 차용한 한 조각의 퍼즐과 해학이 가득 담긴 전개. 항상 쓸쓸하게 이어지지만 읽고 나면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꽁트(?)를 곱씹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오늘은 민성님만의 독특한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피드백 버튼으로 독자님의 커피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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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커피를 찾아서
written by 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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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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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잃어버린 커피를 찾아서 (1)
2022년 1월 1일. 전날에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해를 맞이한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끝내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새해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마음을 먹은 까닭은 사실 2021년 12월 31일에 완벽한 커피를 찾아 2만 원짜리 게이샤 원두커피를 포함해 여섯 잔을 때려 마셨지만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았고, 하지만 이것이 한 7천 원 정도라면 매우 훌륭한 커피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혼자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인가 뭔가가 커피 시장을 망쳤군.'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요즘은 카페에 가면 뭐라도 아는 척 원두를 골라야 하고, 차려입은 바리스타들은 취향에 맞는 커피를 골라주지 못해 안달이다. 카페에 가는 이유는 그저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뿐인데 카페에서조차 멍청해 보이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니... 사실 나는 이런 커피 문화에 조금 지쳐있었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행동하는 것도 이제 좀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아직 끝내주는 커피를 맛보지 못한 까닭에 자꾸만 새로운 카페를 찾아,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신비한 원두를 찾아, 끝장나는 손놀림을 지닌 (동시에 멋있는 척은 별로 안 하는) 바리스타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다. 분명 세상 어딘가에는 끝장나게 맛있는 (거기에 가격도 저렴한) 커피 한 잔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그 완벽한 한 잔을 위해 우리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2. 커피는 커피다.
"커피는 그냥 커피죠" 커피를 좋아하는 다름 씨가 한 말이다. 그는 종이잡지클럽에 올 때마다 『drift』, 『standart』, 『커피앤티』 같은 커피 잡지만 읽었고, 자신이 다닌 카페의 커피 맛에 대해 늘어놓았다. 같은 원두인데 이 카페가 좀 더 추출이 잘 된 느낌을 받았어요, 바리스타분이 하나하나 커피의 뉘앙스에 대해 소개해줘서 깊은 감명을 느꼈어요. 다름 씨는 그냥 종이잡지클럽에 오는 단골일 뿐이라,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고 물어볼 의향도 없었기에 업계 종사자인지, 커피에 얼마만큼의 조예가 깊은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주말에 대구까지 내려갔다 오는 사람이고 휴일에 카페 투어를 다니며 서너 잔의 커피는 너끈히 마시고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것을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름 씨는 1,500원짜리 말통만한 커피를 들고 찾아왔다. 아무 말 없이 거대하게 담겨있는 커피를 바라보고 있자 단골은 조금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가 그냥 커피지 뭐 별 게 있나요 라고 덧붙였다. 혹시 그는 커피의 다양한 맛의 세계를 탐험하다 지쳐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안타깝지만 더이상 다름 씨는 종이잡지클럽을 들를 때마다 커피를 선물로 가져오지도 않고 (이것이 BB레터에 기고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공짜 커피가 필요했다), 매번 거대한 용량의 커피를 가지고 와서 조용히 『GQ』나 『VOGUE』 같은 패션 잡지를 읽다 사라진다. 그는 이제 석 잔의 커피를 연거푸 마시며 불면의 고통에 시달리지도 않고,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핫한 카페를 찾지도 않는다. 어쩌면 말통 만한 커피는 다름 씨의 삶을 구원했는지도 모른다. 커피와 예술을 사랑한 롤랑 바르트가 남긴 말처럼.
"커피는 우리가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한다. 먼저 맛있는 커피를 찾으러 방황하는 동안, 둘째로 커피를 연거푸 마신 후. 결국 커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커피를 통해 우리는 지나치게 피곤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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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랑 바르트가 진짜 한 말은 다음과 같다. "영화는 우리가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한다. 먼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둘째로 상영된 이후에. 결국 영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 왜냐하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지나치게 대리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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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커피는 커피가 아니다
아마 서울에 좀비가 출몰하는 영화가 탄생한다면 그들의 대피소는 백화점 (새벽의 저주, 2004) 도 술집 (새벽의 황당한 저주, 2004) 도 아닌 카페일 것이다. 서울 시민들은 좀비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광경을 뒤로하고 바리스타가 내려준 드립 커피를 마시며 자신들의 할 일에 몰두할 것이다. 이제 카페는 일종의 대피소가 되었다. (정정한다. BB레터 발행일 기준 방역 패스 완료된 사람만)
카페가 대피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메타포다. 하지만 이 메타포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 번째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현대 소설의 시조라 불리는 오노레 드 발자크는 다음과 같이 인간을 분류했다. 일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 이것은 모든 유형의 삶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세 개의 분류 방식이다. 서울의 카페는 이 모든 계층이 모이는 집합소다. 노동자도, 예술가도, 우아한 백수도 모두 카페에 모여 커피를 마신다. 그들은 일종의 피난민이다.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현실은 일종의 거대한 재난이다. 5평짜리 원룸, 전세자금 대출, 도무지 풀리지 않는 현실의 고민. 이들에게는 망명할 곳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해방된 공간. (카페 주인은 열불 터지겠지만) 카페는 커피값 한 잔으로 그 환상을 충족시킨다. 두 번째는 "중첩된 공간" 으로의 카페다. 이제 커피는 커피가 아니다. 커피는 이제 모호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커피는 누군가에게는 휴식인 동시에 노동이며 탈출인 동시에 몰입이다. 이제 일하는 인간은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은 커피를 마시며 일하는 인간을 꿈꾸기도 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커피의 맛이나, 신선한 원두 따위가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끝내주게 완벽한 커피가 아니라 끝장나게 빠른 와이파이 속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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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있는 롤링브루잉, 이곳의 와이파이는 끝장나게 빠르다. ⓒ김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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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잃어버린 커피를 찾아서 (2)
사실 나는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12월 마지막 날 다름 씨와 맛있는 커피를 찾아 표류하며 2만 원짜리 게이샤 원두로 내린 커피를 포함하여 커피를 여섯 잔이나 시켜놓고 카페인에 취해 떠든 소리 중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이미 끝장났다는 말뿐이었다. "저는 도저히 나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다름 씨는 이런 소리를 떠드는 나를 딱하게 생각했는지 119나 112에 신고해 정신병원에 가두는 대신 커피값을 대신 내주었다. (징징거리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 아니, 커피만 그렇게 마셔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매일같이 점심도 먹지 않고 커피만 들이킨다며 계속 잔소리를 늘어 놓기에 차라리 커피를 마시다 죽어버리는 쪽이 더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미 세상은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커피를 마시다 죽는 건 호상 아닐까요?
- 그래도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겁니다, 민성 씨. 물론 아직 많은 사람이 힘들 때지만 잘 견뎌낼 수 있을 거에요. 조금씩 우리는 더 좋아질 겁니다.
- 다름 씨, 제가 커피를 찾아 헤매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수많은 카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수많은 카페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망하고 있는 것입니까. 좋아지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삶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조금씩 좋아지는 만큼 꼭 그만큼의 것이 사라지고 좀 더 나빠집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이것을 좋아진다고 말해야 합니까. 나빠진다고 해야 합니까.
- 빛은 어디에서나 옵니다, 민성 씨. 어떻게 바라보느냐 문제일 뿐입니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러면 그렇게 이루어질 겁니다.
다름 씨와는 커피를 한 잔씩 더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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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및 인용
자크 오몽, 『영화와 모더니티』
정지돈, '위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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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종이잡지클럽 대표
생각보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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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알못 에디터 모모가 BB의 세계에 승선하는 과정을 시리즈로 다룬다. 로스터리 2편에서는 Seed to Cup을 주제로 커피 열매가 커피 한 잔이 되기까지를 배우고 체험한다.
- BB레터 #041 | 22.01.19. 박은실 Mo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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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첫 커피의 추억부터 일상 속 커피 이야기까지. 음악가 이동열이 기억을 더듬어 적어 내려간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 BB레터 #035 | 21.12.06. 이동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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