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별 바리스타의 내추럴 커피 레시피 청국장맛 커피?
BB Letter #043 | 2022. 02. 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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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를 들고 설레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콜롬비아 라 몬타냐 내추럴 아이스]를 손에 든 퇴근길이었지요. 입사 이후 처음으로 따끈따끈한 신상 원두를 집에서 마셔보기로 했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며 커피를 내리는 데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거든요. 출시 전부터 장미 그림이 그려진 패키지 시안을 엿보며 어떤 맛일지 궁금했던 터라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내추럴 와인의 펑키함’이라는 테이스팅 노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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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는 산지를, ‘라 몬타냐’는 농장을, ‘내추럴’은 가공 방법을 나타낸다는 정도도 이제는 읽을 수 있습니다. ‘아이스’라는 이름도 특이하지 않나요. 가공 단계에서 생두를 일정 시간 얼리면 꽃향이 올라온다고 해요. 이를 발견한 농부의 이야기를 데릭에게 전해 듣고는 맛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속속 올라오는 ‘커잘알’ 팔로워분들의 후기도 저를 기대에 차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원두 후기보다 뭔가 더 톡특한 커피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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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어설픈 홈브루잉 실력으로 커피를 갈아 내렸습니다. 일단 맛있었습니다! 딸기나 체리 같은 새콤 달콤한 맛이 났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묵직함 느낌도 들고 과일 맛도 선명한데, 지배적인 어떤 향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와인이라기엔 무겁고 어딘가 익숙한 맛. 무언인지는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마침 놀러 온 동생에게 ‘이거 어떤 맛이 나는지 봐봐!’하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권했습니다. 동생이 대답했습니다.
“된장?”
순간 머리에 번개가 쳤습니다. 된장...된장이라니...!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맛을 볼수록 설득력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된장의 망령이 저의 미각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딸기와 체리맛이 나는 된장물이라니. 맛있는데 이상해... 우리가 심오한 커피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은 원두는 커피를 즐겨 마시는 친언니에게 조용히 나눠었습니다. 다음 날 언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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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의심하게 만든 언니의 메시지 ©모모Mo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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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된장, 된장...! 저는 된장의 굴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원두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전문성과 노력, 애정이 들어가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있기에 어디 가서 말도 꺼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된장 커피를 조용히 마음에 묻기로 했습니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지나갈 것이다...
된장과의 두 번째 만남은 일주일 뒤 로스터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나서는데 마음에 묻어 둔 익숙한 냄새가 로스터리에 가득했습니다. 정신이 번뜩 들던 찰나, 옆에 있던 소이가 말했습니다.
“음~ 어디서 내추럴 내리나 보다!”
그것이 내추럴 프로세싱 커피 고유의 향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된장의 굴레에 빠진 이야기를 들은 소이는 웃으며 “내추럴 커피로 커핑할 때 된장, 고추장, 춘장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해요. 발효 뉘앙스 때문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소이에게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사실 제 마음 속 최애 커피 저장소에서 내추럴 커피를 조용히 탈락시키고 있었습니다.
‘콜롬비아 라 몬타냐 내추럴 아이스’와 오늘부터 1일인 줄 알았는데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렇게 된장 아니 내추럴 커피의 상처를 마음에 묻던 어느 아침, 메일함에 놀라운 제목의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청국장 맛 커피”
제겐 계시에 가까웠지요. 김은별 바리스타(루나)가 보낸 ‘바리스타 로그’였습니다. ‘바리스타 로그’는 빈브라더스의 바리스타팀이 남기는 기록인데요, 고맙게도 전체 직원에게 메일로 발송됩니다. 운명적 예감에 이끌려 재빨리 메일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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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스타 로그] 청국장 맛 커피
보낸 사람: 김은별 바리스타(Luna)
받는 사람: 바리스타팀
1월 12일 (수) 오전 1:20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중년 여성분이 따뜻한 ‘콜롬비아 라 몬타냐 내추럴 아이스’ 브루잉과 레몬 케이크를 주문하셨다. 나가시는 길에 트레이를 반납하시면서 나에게 말씀하신다.
"고추장 같은 맛이 나요... 오호호호."
음...당황스럽지않다. 나에게도 내추럴 원두는 어떻게 내려도 다 그렇게 느껴지니까...
작년에도 젊은 여성 두 분이 각각 다른 싱글빈으로 브루잉을 시키셨는데, 마침 포스 앞에 있다가 그분들의 리액션을 보고 말았다. 동공 지진이 느껴졌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커피에서 청국장 맛이 난다고. 다행히도 상황이 유쾌하게 흘러가서 다른 원두로 다시 브루잉을 내려 드렸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그 중년 여성분은 그래도 웃으면서 재밌다는 듯이 의견을 남겨 주셨다. 위에서 얘기했듯, 나에게 내추럴 원두란... 멸치를 찍어 먹고 싶은 고추장 뉘앙스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괜찮으면 레드와인정도...? (나는야 와인알못)
스타필드에서 운영하는 이달의 커피 코스에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의 자세로 라 몬타냐의 레시피를 잡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마시기 편할까?’, ‘장 같은 발효취를 긍정적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농도를 낮추고 향을 최대한 끌어내자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화이트 와인 같은 톡 쏘는 산미가 나왔다. 나이스...! (나는야 와인알못~) 그래, 이 정도면 반 컵 정도는 마실 수 있겠다. 게다가 식어가면서 청포도 같은 뉘앙스가 굉장히 도드라지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레시피를 아직 손님에게 선보인 적이 없었는데 마침 그 중년 여성분이 또 방문하셨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케냐 커피와 레몬 케이크를 주문하셨다. 포스에 있던 내가 케냐 커피는 콜롬비아보다는 좀 더 취향에 맞으실 거라고 말씀드리자 다시는 콜롬비아를 주문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동료들과 잠시 상의한 뒤 콜롬비아를 이달의 커피 코스 레시피로 내려서 가져다드렸다. 생각보다 감동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단 내 레시피의 의도가 그분께 잘 전달되어 기뻤다. 노트 표현을 엄청나게 화려하게 해주셨고, 나에게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저도 맛있게 드셔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나도 두 손 모아 감사 인사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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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다 읽은 제 심정, 상상이 가시나요?
원두도 저의 미각도 죄가 없다는 사실에 1차 안도,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가능성에 2차 안도. 바리스타의 인간미와 실험 정신 그리고 친절함에 취한 저는, 저도 모르게 감동의 답장을 써내려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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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야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날 오후, 두 번째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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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RE: [바리스타 로그] 청국장 맛 커피
보낸 사람: 김은별 바리스타(Luna)
받는 사람: 박은실 에디터(Momo)
1월 12일 (수) 오후 1:23
모모 안녕하세요! 이렇게 답장을 주시고 제 얘기에 공감해 주시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ㅋㅋㅋ
스타필드 오셔서 제가 직접 내려드린 콜롬비아를 맛보여 드리고 싶지만...
스타필드에...멀어서... 오시지 않을 거란 걸... 저는 잘 알아요...
그래서 제가 레시피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일명 “하리오V60와 드립 포트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쒀!!!”
준비물 | 하리오V60, 원두
분쇄도 | 스테이지 디팅 그라인더 기준 7
원두양 | 18.5g
물온도 | 93도 (맞출 수 없다면 펄펄 끓는 물을 1분 정도 후후 불어주세요!)
1. 물 40g을 넣고 40초 동안 뜸을 들입니다. (물 넣고 가볍게 흔들기)
2. 40초 뜸이 끝나면 + 물 110g
3. 1분 30초가 되면 + 물 100g
4. 추출이 완료되면 추출된 커피에 뜨거운 물을 20g 정도 추가합니다.
5. 가볍게 흔들어서 잘 섞은 뒤 향을 음미하며 식기 전에 재빨리 마십니다.
(너무 식으면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된장....청국장...고추장...ㅋㅋㅋㅋ)
모모를 위해 열심히 레시피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꼭 드셔 보세요(하투하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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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께 레터를 보내는 지금, 제 옆에는 ‘이전과 다른’ 콜롬비아 라 몬타냐 내추럴 아이스 커피가 놓여있습니다. 루나의 레시피로 커피를 내려봤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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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특별히 로스터리에서 저울까지 빌려왔습니다. ⓒ박은실Mo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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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커피라고 해도 믿을 만큼 맛이 달라서 놀랐습니다. 일단 된장 전혀 안 느껴지고요! 오히려 푹 익은 자두나 어두운 보라색으로 익은 과일이 확 떠올라요. 그만큼 달고 와인의 풍미도 느껴집니다. 전엔 분명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마셔야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도시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이 어울릴 것 같달까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내추럴은 특유의 발효 뉘앙스가 매력인 커피라고 합니다. 내추럴을 사랑하시는 분들은 잘 익은 과일이나 와인이 떠오르는 이 미묘함을 즐기시는 것이라고요. 또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더 선명한 향미를 내는 내추럴 커피들이 많기에 장맛이 특유의 향인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빈브라더스 드립백 중 헤일로 베리티 내추럴 커피나 2월에 소개되는 에티오피아 압도쉬 내추럴 같은 경우에는 장 향은 거의 없고 베리 향이 훨씬 더 지배적이어서 꽤 다른 경험을 하실 수 있다고-로스터리에서 주워 들었습니다.)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셨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이 쓴 걸 왜 마실까 했었거든요. 처음엔 마냥 뜨겁고 쓰게만 느껴졌던 커피가 이제는 여러 갈래의 맛으로 느껴집니다. 마실수록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내추럴 커피도 그런 매력이 있는 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오늘 레터를 읽으시며 호기심이 생기셨거나 발효 커피의 맛을 보고 싶어지셨다면 내추럴 원두를 즐겨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스타필드 하남 근처에 계시다면 김은별 바리스타(루나)를 찾아가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덧.
레터를 다 작성하고서야 ‘커피위키’에서 바리스타팀의 브루잉 레시피를 볼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콜롬비아 라 몬타냐 내추럴 아이스’를 마셔 본 바리스타 개개인의 테이스팅 노트와 각각 다른 기구로 추출할 수 있는 추출 레시피까지 모두 오픈 되어있네요. 이것도 정말 재밌습니다. 왜 이제 봤나 아쉬우면서도, 덕분에 길도 잃어보고 즐거운 레터도 보낼 수 있었으니 모든 게 잘 되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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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실 Momo, 뉴스레터 에디터
커잘알의 세계에 떨어진 커알못 에디터.
함께하기, 재미있게 하기, 의미있게 하기. 세 가지 기준으로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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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 NEWS
함께할 동료를 찾습니다!
탁월한 커피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이 길에 함께할 팀원을 모십니다.
카페, 베이커리, HQ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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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커피다. 동시에 커피는 커피가 아니다. 완벽한 커피 한 잔을 찾아 방황하는 듯 써 내려간 '종이잡지클럽' 김민성 대표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 BB레터 #042 | 22.01.26. 김민성 |
생두를 가공할 때 향을 직접 입히는 방식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향커피 이야기를 소개한다.
- BB레터 #025 | 21.09.29. 김민수 연구원 Der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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