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종각에 있는 결 매장에 들렀습니다. 무슨 커피를 시킬까 고민하다가 벨벳화이트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앞에 있던 바리스타 썸머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썸머의 자신 있는 표정을 보니, 오늘 아침 에스프레소 레시피 세팅할 때 벨벳화이트가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곧 진동벨이 울리고 커피가 나왔습니다. 테이블 앞에 앉아 한 모금 들이키는데 근래 제가 마셔본 최고의 벨벳화이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일까 궁금해져서 회사 메신저 슬랙에 들어가 결팀을 찾았습니다.
결팀의 바리스타 윌리의 제보를 통해 제가 마신 벨벳화이트가 2월 11일 1번 배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이 배치가 왜 맛있는지 로스터분들을 찾아 질문할 차례였습니다. 물론 질문을 하기 전에 나름대로 리서치를 했어요. 커피라는 것이 워낙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제가 마신 한 잔이 우연히 맛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안타깝게도 제가 마신 2월 11일 1번 배치는 이미 판매가 완료되어 로스터분들과 함께 마시며 토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다음에 체크할 수 있도록 제보를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습니다.
최근에 리뉴얼된 원두카드에도 적었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던 제가 처음으로 커피가 맛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벨벳화이트를 마시고였어요. 그 후 BB의 고객으로서, 어느 시점 이후로는 BB팀의 일원으로서 벨벳화이트를 좋아해 왔지요.
한 번은 ‘벨벳화이트 좋아하세요?’라는 제목으로 빈브라더스팀 모두에게 메일을 쓴 적이 있어요. 길었던 메일의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저는 벨벳화이트를 정말 좋아합니다.
블랙수트와 몰트를 좋아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BB의 엣지는 벨벳화이트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늘 최고의 벨벳화이트를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메일을 보낸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바리스타 베로에게서 답장이 왔어요. 베로 자신도 벨벳화이트의 팬이며, 이 커피 때문에 빈브라더스 입사를 결심하였다고요. 무릇 팬이라면 그 대상이 베스트일 때나 그렇지 못할 때나 한결같이 응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지요.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벨벳화이트는 에티오피아 커피로 이루어진 빈브라더스의 시그니처 블렌드입니다. 재스민꽃과 시트러스 과일 향미를 담당하고 있지요. 에티오피아 뉴크롭이 로스터리에 도착하는 요즘, 목요일마다 생두 코디네이터 로사, 로스터 케이브와 만나 에티오피아 커피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올해 첫 에티오피아 커핑이 있던 2월의 어느 날, 케이브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늘 진짜 중요한 커핑이네요"라고 하는 거예요. 평소에 과묵한 편인 케이브가 갑자기 저런 말을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조금 뭉클해졌습니다. BB의 모든 커피를 자식처럼 챙기는 로스터 케이브에게도 벨벳화이트용 에티오피아 커핑은 ‘진짜’ 중요하구나, 벨벳화이트가 훌륭했으면 하는 우리의 마음이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오늘도 빈브라더스 로스터리에선 에티오피아 커핑이 펼쳐졌습니다. 작년 에티오피아의 품질이 수확기에 내린 비로 다소 아쉬웠던 것과는 달리, 올해 에티오피아는 품질이 괜찮은 느낌입니다. 오늘 마신 것 중에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선명한 꽃향을 지닌 커피가 있었어요. 굳이 마실 필요도 없이, 향만 맡아도 이건 사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변이 없다면 어느 시점에는 벨벳화이트로 여러분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로사?)
앞에서 언급한 ‘벨벳화이트 좋아하세요?’라는 메일을 언제 썼나 찾아보니 작년 3월 17일이더군요. 한 달이 넘게 진행된 에티오피아 커핑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이었습니다. 주절주절 벨벳화이트에 대한 팬심을 토로하던 메일의 마지막은 이러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주 커핑은 에티오피아 워시드 최종 라운드입니다. 올해 그리고 내년 초까지 벨벳화이트에 사용하게 될 에티오피아 워시드 생두를 결정하게 되는 커핑입니다. 설렘 반 걱정 반, 아니 사실은 걱정이 더 많지만 부디 좋은 생두를 고를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제 마음 속 부동의 1위 벨벳화이트가 그만한 엣지를 올 한해 지속적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BB하면 떠오르는 커피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당당하게 벨벳화이트 좋아하시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다시 읽으니 조금 부끄럽지만, 그때의 제 마음이 지금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더 많은 분이 벨벳화이트를 좋아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인스타그램 #빈브라더스를 검색해서 벨벳화이트 칭찬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여전하고요. 빈브라더스 매장에서 벨벳화이트를 주문하시는 고객분들을 지켜보며 “벨벳화이트 좋아하세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렇게 다채로운 향과 맛을 지닌 커피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한국에서든, 말레이시아에서든 빈브라더스 매장에만 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에티오피아 커피. 마치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에 가서 오늘 제발 잘해라-고 응원하듯 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게 되는 커피.
벨벳화이트는 저에게 그런 커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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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