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낯선 커피를 취향으로 만들기 짜파게티가 다크 초콜릿이 되기까지
#061. 낯선 커피를 취향으로 만들기 | 22.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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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주에 이어 다시 한번 찾아온 데릭입니다.
독자님, 초콜릿 좋아하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은 화이트 초콜릿입니다. 초콜릿을 별로 안 좋아한단 이야기지요. 가끔 급속 당 충전이 필요할 때 설탕 듬뿍 들어간 밀크 초콜릿을 먹기도 하지만, 살려고 먹는 거지 좋아해서 먹는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콜릿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특히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고요.
갑자기 무슨 초콜릿 이야기인지 의아하실 텐데요. 이번 레터에서는 저에게 있었던 특별한 커피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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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에서 만난 짜파게티
때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매주 커핑을 진행하는 빈브라더스 로스터리지만, 그 커핑들 사이에도 더 인상적이거나 덜 인상적인 세션이 있기 마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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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터리에서 커핑 중인 데릭. ©박은실Mo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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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가장 기억에 남는 커핑이 언제였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아마 나인티플러스 커피 12종을 맛본 2020년 8월 4일이라고 답할 것 같아요. 그 12종의 커피 중에 가장 인상적인 커피가 무엇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짜파게티 외에 다른 노트를 생각할 수 없었던 나인티플러스의 루비(Ruby)라고 답하겠습니다. (더 특이한 커피들도 있었지만, 루비에서 느낀 짜파게티 향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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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는 바로 그 맛. ©농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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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엉뚱하게도 왜 ‘짜장면’이 아니라 ‘짜파게티’가 떠올랐는지 궁금했어요. 나중에 짜파게티 소스를 검색해보니 양파와 캐러멜이 들어가더군요. 춘장에 캐러멜라이즈 된 양파가 섞였을 냄새를 상상하니 얼추 짜파게티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무슨 이런 커피가 다 있지, 생각하며 나인티플러스 커피의 원두 봉투에 어떤 테이스팅 노트가 쓰여있는지 찾아보았어요. 나인티플러스 팀은 (아마) 짜파게티를 안 먹어봤을 텐데, 이 커피에 어떤 테이스팅 노트를 부여했을지 궁금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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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모두에게 파워풀한 경험을 안겨준 2021 옥션 시리즈 루비. ©빈브라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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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봉투에 쓰여 있던 노트는 '다크 초콜릿'이었습니다. 순간 '이건 사기야'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비록 초콜릿을 잘 안 먹긴 하지만 그래도 무슨 맛인지는 아는 사람인데, 이게 어딜 봐서 다크 초콜릿일까 싶었습니다. 뒤에 적힌 제비꽃, 머스크, 자몽 캔디와 같은 노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인상적인 커피인 건 인정하지만, 다크 초콜릿이란 노트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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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초콜릿과 식은 커피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저는 곧 BB에서 출시될 콜롬비아 커피를 종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습니다. 200시간 가까이 발효를 진행한 내추럴 커피로, 제법 과일스러운 향을 갖고 있지만 이 커피 역시 저에게는 짜파게티로 다가오는 커피였죠.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커피가 더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다시 홀짝홀짝. 그때 머리를 번뜩 스치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믿기가 힘들었지만 그건 다크 초콜릿이었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다크 초콜릿을 먹으면 열심히 삼킨 후에도 아직 일부가 입안에서 남아 끈적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미각이 짐을 덜어서인지 저는 그 시점에 초콜릿의 향을 가장 잘 맡게 되는 것 같은데, 바로 그 향이 이 커피에서 나는 것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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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짜파게티가 다크 초콜릿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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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럴 때 자신을 의심해봐야 하겠죠. 어쩌면 제 착각일지도 모르니까요. 사실 전날 바로 그 자리에서 콜롬비아산 초콜릿을 먹었거든요. 꽤 다크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서 전날의 기억이 무의식중에 떠올라 착각을 일으킨 걸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제 옆에 있던 누군가가 다크 초콜릿을 먹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진상이 무엇이었는지 알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달라졌거나 커피가 달라졌거나일 텐데요. 실제로 커피의 온도가 내려가긴 했으니까 후자의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짜파게티와 다크 초콜릿의 차이가 향의 세기는 아닐까 하고 혼자 추정했습니다. 온도가 많이 내려간 후엔 아무래도 향미 물질이 덜 증발할 테고, 저는 그 약해진 세기의 향을 다크 초콜릿으로 느낀 게 아닐까 싶었던 건데요. 다시 말하면 된장, 다크 초콜릿, 흔히 아시는 라스 라하스 농장의 페를라 네그라 같은 커피가 공통으로 가진 향이 있는데 그 세기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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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과 인식의 변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저는 다시 한번 발효가 오랜 시간 진행된 내추럴 커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의아하게도 그날 이후로 커피에서 짜파게티 향이 난다고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매주 로스터리에서 커핑을 하고 있는데 말이죠. 세상의 커피 생산자들이 더 이상 ‘짜파게티 커피'를 생산하지 않게 되었거나, 아니면 제가 달라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왜 더 이상 진득한 내추럴 커피들을 짜파게티 향이 아니라 다크 초콜릿 향이 난다고 느끼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제가 그런 유형의 커피들에 꽤 익숙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극단적인 예를 드는 것 같지만) 왜 고수나 홍어처럼 처음에는 부정적인 향으로 느끼다가 차차 익숙해지는 경험들 다들 있지 않으십니까. 가장 특징적인 향을 이상하게 여기다가 그 향에 익숙해지고, 숨겨져 있던 장점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이랄까요.
지난 2년 동안 제가 다크 초콜릿 노트를 우여곡절 끝에 받아들이게 된 이 이야기는 어쩌면 어떤 대상에 대한 적응과 인식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불호에 가까웠지만, 자주 접하다 보니 결국 적응하게 되고 (드물지만) 좋아하게 되는 이야기. 어쩌면 식품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란 종종 이런 식으로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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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이 강렬했던 콜롬비아 엘 미라도르. ©빈브라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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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에 BB에서 출시한 콜롬비아 엘 미라도르라는 커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요. 바로 위에 언급했던, 제게 다크 초콜릿 노트를 일깨워준 커피이자, BB 바리스타팀과 고객들을 지독한 발효의 늪에 빠뜨렸던 커피입니다. 한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BB의 커피 취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릴 정도였어요.
저 역시도 이 발효 드립커피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차에, 두 명의 바리스타가 저를 구제해주었습니다. 한 명은 이 커피로 내린 라떼로, 다른 한 명은 이 커피로 내린 콜드브루로요. 따뜻한 드립커피로 마실 때는 발효 느낌으로 가득하던 커피를 라떼로 마시니 진한 다크초콜릿의 풍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콜드브루로 마실 때는 선명한 포도 향을 느낄 수 있었어요. 놀라운 경험이었고, 바로 이 커피의 팬이 되어버렸지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적절한 방법으로 경험한다면 새로운 취향이 될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주욱 들려드렸는데요. 독자님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고 결국 좋아하게 된 경험이요. 아래 링크를 통해 들려주신다면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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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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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 저도 이런 생각이 들어서 생수별로 사서 비교해 봤는데, 경수가 커피 추출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오히려 전 경수로 약배전 원두를 내리니 맛이 훨씬 풍부해진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경수로 중배전이나 강배전 원두를 내리면 쓴맛이 도드라진다고 하네요. 아무튼 약배전 원두에는 경수 추천! 최근에 나온 닥터유 경수와 에비앙 둘다 내려 봤는데 닥터유로 내린 게 확실히 맛있었습니다. (야옹님)
💌 숨 쉬는걸 의식하지 않듯이 물맛을 생각하고 마셔본 적이 없는데 글을 읽고 나니 어떤지 궁금해졌어요. 저도 생수 여러병 사다가 실험해보고 싶어요. (주누)
💌 예전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날 기분에 따라 원하는 원두가 다르지 않을까? 나중에 정말 나중에 카페를 열게된다면, 원두를 종류별로 올려놓고 그 날 기분에 따라 사람들이 원하는 커피를 내려주고 싶다는 생각? 근데 진짜 어찌보면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네요... 대신! 열심히 커피를 마시는 걸로ㅎㅎ (KONGKONG)
💌 근래 마시는 물을 바꾸어서 엄청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Baegonia)
💌 평소 궁금했던 물의 차이 관련한 내용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익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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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메일은 지워주세요. 메일함을 비우는 것만으로도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커피 생활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난 BB레터는 빈브라더스 뉴스레터 아카이브에서 언제든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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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두를 가공할 때 향을 직접 입히는 방식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가향커피 이야기를 소개한다.
- BB레터 #025 | 김민수 연구원Der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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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애호가들에게 기호식품으로 기능했지만 인류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그를 넘어서는 역할들을 해 온 커피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 BB레터 #051 | 김민수 연구원Der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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