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루틴이 있으신가요? 저는 컵에 물을 가득 담아 꿀꺽꿀꺽 마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입안을 적신 후, 식도를 타고 넘어 위장에 도착하는 물의 감각을 느끼다 보면 잠이 조금 깨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 물 한 잔이 참 맛있습니다.
티파니 영의 블라인드 테스트
이렇게 매일 마시는 물이지만, 제가 처음으로 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3월에 방영된 <아는 형님>을 보고 나서였어요. 소녀시대 출신의 티파니 영이 다섯 가지 물 브랜드를 블라인드로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다섯 브랜드를 모두 맞혔을 뿐만 아니라 각 물 브랜드의 특징을 설명해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티파니 영이 각 물 브랜드를 구분할 수 있었던 힌트는 아래와 같았다고 해요. 평소에 해당 브랜드의 물을 드시는 분들, 공감이 가시나요?
에비앙 : 가장 미끌미끌하고 목 넘김이 무겁다.
아이시스 : 미끌미끌한데 뒤에 조금 향이 난다.
백산수 : 유독 끝이 가볍다. 와인으로 치면 피노 누아 같은 느낌.
삼다수 : 어떤 온도에 마셔도 똑같다.
평창수 : 가장 달고, 차가우면 더 달다.
이때만 해도 ‘물 브랜드별로 맛의 차이가 꽤 있구나'하고 느끼는 정도였는데요. 반년 후인 9월에 실제로 ‘진지하게' 물맛의 차이를 경험해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빈브라더스 로스터리에서 정수필터별로 물맛 그리고 커피 맛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는 세션이 열렸거든요.
정수필터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로스터리에 갔는데, 세션을 열심히 준비해준 김의성 테크니션(어스) 덕분에 기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정수하는 방식이었어요. 여러 가지 정수 방식이 있는데 이번 세션에서 체험해볼 필터는 카본 필터 2종과 이온교환수지 필터 2종이었습니다. 각 정수 필터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아래 간단히 설명해보았습니다.
정수필터별 특징
카본 필터(탄소 필터)
가장 기본적인 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활성탄의 흡착성을 이용하여 물속에 들어있는 염소나 유기화합물 같은 오염물질을 제거해주죠. 지역에 따라 미생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수돗물에 염소를 상대적으로 많이 투입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경우 카본 필터의 필요성이 더 높아질 수 있겠습니다.
이온교환수지 필터
벌써 말이 어려운데요. 위의 카본 필터가 활성탄의 흡착성을 이용해 오염물질을 제거했다면, 이온교환수지 필터는 불쾌한 이온을 덜 불쾌한 성분으로 바꿔줍니다. 오염물질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한데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어요. 바로 이온교환수지 필터를 사용하면 물의 경도*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 경도(hardness)란?
경도는 또 무엇인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해 드릴게요.
물속에는 칼슘과 마그네슘 같은 금속 이온들이 들어있는데요. 이런 이온들이 많이 들어있을수록 경도가 높은 물, 즉 경수이고, 거의 없거나 조금만 있는 경우에는 연수라고 합니다. 물의 경도가 높아지면 비누가 잘 녹지 않거나, 에스프레소 머신의 보일러 용수로 사용되었을 때 스케일이라 불리는 석회석 찌꺼기가 더 많이 발생합니다.
그럼 경수가 맛있는 건지 연수가 맛있는 건지 궁금하실 수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취향의 영역일지 모르겠습니다. 프랑스 물인 에비앙의 경우 경도가 242mg/l로 높은 편이고, 제주 삼다수는 18.8mg/l 정도로 연수에 속하는데 각각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요. 이 둘을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밌는 테스트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브랜드별 경도가 궁금하실 것 같아 아래 국내외 생수에 대한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테스트는 탄소 필터 2종, 수소이온 필터, 나트륨이온 필터 이렇게 총 네 종류의 정수필터를 통해 걸러진 물맛을 비교하고, 동일한 원두를 각각의 물로 추출하여 내린 커피 맛을 비교하는 두 단계로 진행되었어요. 모두 블라인드 테스트였고요. 세 개의 컵 중에 다른 하나를 고르는 트라이앵귤러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테스트 참여자들은 맛의 차이를 예민하게 구분할 수 있는 숙련된 인원들로 구성되었어요.
테스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니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길어서 간략하게 결과만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자신만만했던 참여자들이 시무룩해지는 데 불과 몇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시작해볼게요.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레터의 제목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아차리셨을 텐데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커피의 98% 정도를 차지하는 것은 물입니다. 커피 맛이 이상한데 아무리 사용한 원두를 조사해봐도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알고 보면 물이 문제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죠. 그래서 이미 몇 년 전부터 많은 커피인들이 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들이 사용하는 물을 체크하고 컨트롤하기 시작했고요.
티파니 영처럼 여러 생수 브랜드를 시도해본 후 본인이 선호하는 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자주 내려 드신다면, 같은 커피를 다른 브랜드의 생수로 내렸을 때 어떻게 향미가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것 역시 흥미롭겠네요.
워낙 색깔이 진하고 까매서 자주 잊게 되지만 커피의 대부분이 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커피를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은 어느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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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수석연구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