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방문도 했어요?
음, 커핑 랩 운영자가 되고 반 년 정도 후에 창업자 메노가 에티오피아로 출장을 갔어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출장팀으로 선발이 되지 못 해서, 그냥 제가 비행기 티켓 사서 같이 따라갔어요. 메노가 따라 오는 것은 오케이 해줬거든요.
그때 우연히 파나마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 농장*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농장을 운영했던 프라이스 피터슨(Price Peterson)이 70대셨는데, 인류학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저를 인류학자처럼 대해주시더라고요. 같이 있는 동안 커피의 문화적 맥락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셨는데 그 질문들 덕분에 커피 업계의 현실과 이해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하시엔다 라 에스메랄다는 2004년 베스트 오브 파나마에서 역대 최고가에 낙찰 받으며 게이샤를 슈퍼스타로 데뷔시킨 농장입니다. (데릭)
예전 남미 여행 때는 파나마 스페셜티 커피 협회 커핑에 가더니 에티오피아에서는 파나마 라 에스메랄다 농장주 분을 만났군요. 믿기지 않는 우연이 이어지네요.
하하. 그러게요. 제가 인류학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밟았어요. 그때의 인연으로 라 에스메랄다 농장을 연구 과제로 삼고, 실제로 농장에서 4개월 동안 살면서 농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했지요. 라 에스메랄다 농장의 커피를 수확하고 가공하던 사람들은 파나마 원주민이었는데요. 그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라 에스메랄다의 커피가 생계가 너무나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죠.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페루에서 영세 농민들을 지원하는 쿨티발의 창업으로 발전하게 되었겠군요. 파나마에서 네덜란드로 돌아온 후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졌어요?
일단 석사 논문을 마무리 했고요. 학업을 병행하느라 트라보카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졸업 후에 풀타임으로 일하게 되었죠. 트라보카가 여전히 성장하던 차라 일이 많아져서 조수가 필요했는데 그때 뽑은 사람이 나중에 쿨티발을 공동창업하게 된 테드로스(Theadros)였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일하다가 2013년에 트라보카를 떠났어요. 그만둘 즈음에는 최고 품질관리 담당자(Head of Quality Control)로 일하고 있었는데 커피 바이어나 트레이더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쪽에는 관심이 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직접 산지에 가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제가 인류학으로 석사를 하기도 했고, 학문 쪽에도 여전히 흥미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트라보카를 그만두고 암스테르담의 어느 연구소에 들어가서 사회경제 개발과 젠더 쪽 자문하는 일을 몇 년 했어요. 덕분에 정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다녀올 수 있었는데요. 많은 것을 배우고 다양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제가 이런 특권을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아니어도 이 일을 할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다시 커피 산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 보단 한 지역에서 뭔가를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쿨티발의 시작이군요.
네, 2017년에 트라보카에서 만난 테드로스와 함께 쿨티발이란 페루 커피회사를 차렸어요. 테드로스와 커핑 랩에서 함께 일하며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는데요. 그 시절에 이미 어느 정도 쿨티발의 이미지를 그려 보았던 것 같아요.
왜 페루였어요?
제가 암스테르담에서 일하는 동안 테드로스가 페루에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쌓아놓은 상태였어요. 페드로스가 페루 사람와 결혼했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어느 정도 인프라가 잘 갖춰진 중미 대비 남미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페루 커피의 잠재력을 알고 있어서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어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어서 어쩌죠?
현실적인 이유라서 저는 더 좋네요. 2017년에 시작했으니 어느덧 7년이 지났는데요. 어떤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보면 상당히 긴 시간 같은데요. 사실 저에게는 쿨티발이 이제 막 시작한 것처럼 느껴져요. 첫 2년은 제 통장을 털어서 커피를 구매했던 시기고요. 2019년에 테드로스가 공식적으로 쿨티발에 조인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보려고 했는데 2020년에 팬데믹이 터졌죠. 그때부터 2023년까지는 그저 하루하루 생존을 기도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두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외 환경에 취약한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고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취약성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고, 결국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죠.
팬데믹 시기가 너무나 힘들었기에 오히려 ‘치차 챌린지’ 같은 재미있는 대회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생산자들이 가난을 극복하고 지속가능하게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런 재미가 생산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치차 챌린지를 쿨티발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시기 쉽지만, 저는 이 대회에 참가한 생산자들에게서 이니셔티브(initiative)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올해가 첫 해였는데 앞으로 더더욱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쿨티발은 생산자들 뒤에서 든든히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리자너의 커피 여정을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리마까지 왔네요. 커피 업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울림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한국에서 치차 챌린지를 통해 만난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이런 커피 대회가 있는지도 모르셨을 텐데, 소중한 시간 내어 찾아주셔서 감사했고 여러분과 연결되는 느낌이 정말 따뜻했어요.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