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회사에게 그 둘의 의미. (feat. DD)
싱글오리진 vs 블렌드 BB Letter #017 | 2021. 7. 28. 독자님, 잘 지내고 계셨나요? 잘 쉬고 돌아온 소이입니다. 카페에 들어가면 소름 돋게 추웠다가, 밖에 나오면 땀샘이 있는 줄도 몰랐던 어깨에서 땀이 흐르는 진기한 더위. 동네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매미들의 서라운드 합창. 여름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구나 실감하는 한 주였어요. 감각이 깨어나는 걸 보니 마음의 여유가 좀 났나봅니다. BB의 브랜드 디렉터 디디는 평소에는 전체를 조망하다가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지점이 선명해지면 프로젝트 리드로 들어와 실무에서 뛰는데요. 작년 초 그렇게 진행된 프로젝트로 '리브랜딩'이 있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변화만큼 지반공사에도 공이 많이 들어갔던 프로젝트였어요. 우리는 왜 모여있지? 왜 BB여야 하지? 무엇을 전하려고 하지? 같은 중요한 질문을 끌어안고 팀과 이야기하고 정리하며 고민한 기간이 길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그 중 일부입니다. 독자님에게는 이미 너무나 익숙할 개념, 싱글오리진과 블렌드.
오늘은 BB가 커피하는 팀으로서 그 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두 가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각 제품이 그 제품답게 하는 데 있어서 팀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같은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해요. 오늘은 메뉴판에 적힌 디테일에서 멀어져 줌아웃해봅니다. 디디의 관점으로 전체를 같이 조망해보시죠.
by 성훈식 DD | February 2020 안녕하세요, 디디입니다. 한창 리브랜딩 프로젝트 막바지이던 2020년 2월, 블렌드(Blend)와 싱글오리진(Single Origin)의 개념을 우리가 커피회사로서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제안해야 할지에 대해 함께 토의하고 정리했던 문서가 있었어요. 아카이브 페이지를 정리하면서, 커피를 사랑하는 독자님과 함께 나누어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라 가져와 봅니다. 싱글오리진 "훌륭한 재료를 온연히 즐기는 방법" 커피업계에서 싱글오리진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원산지(single origin)에서 수확한 커피를 일컫습니다. 커피의 이름이 보통 해당 커피의 원산지를 이야기하죠(ex. 에티오피아 우라가). 다른 음료로 비유하자면 '경북 예천에서 나는 사과로 만든 주스'겠네요. 최근에는 농장주의 이름을 따는 커피도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지역의 이름을 그대로 커피의 이름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세밀하게 농장 단위까지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ex. 콜롬비아 우일라 지역의 '비야 베툴리아' 농장) '경북 예천의 '시골이야기' 농장에서 2021년 수확한 사과를 착즙해서 만든 주스' 정도가 되겠죠. 내가 마시는 커피를 누가 재배했는지, 어떠한 환경에서 수확했는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재료라면 그만큼 신뢰도도 올라갑니다. 농장의 파트너로서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도, 투명성만큼 중요한 것은 없죠. 대체적으로 커피의 추적가능성과 그 생두의 품질은 높은 상관관계를 지닙니다. 아무래도 농장이나 농장주의 이름을 걸고 하는만큼, 제품에 대한 자신감도 비례하기 마련이겠죠?
빈브라더스가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싱글오리진은, 기본적으로 농장에서 설계하고 제안되는 커피입니다. 이상적인 제품의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농장에서 추수 및 가공(프로세싱)되어, 생두백에 담겨졌을 때 커피라는 제품에 대한 설계가 거의 끝났다고 여기는 거죠. 물론 그 설계의 방법 또한 다양합니다. 자연의 섭리와 축복에 그 설계를 완전히 위임하는 커피들도 있을테구요, 농장주가 창조주로서의 욕심을 내어 가능한 한 디테일하게 설계하고자 하는 커피도 있습니다. 최근 옥션시리즈로 선보였던 <유조&루비>가 그러한 커피들이죠. 이렇게 농장에서 제품을 다 설계한다고 하면, 커피 회사가 하는 일은 뭘까요? 일단은 매의 눈(과 혀)으로 멋진 재료를 포착하는 일입니다. 밖에서 보이지 않지만, 매월 수십 종류의 커피를 테이스팅하는 작업입니다. 다음은 이 재료의 의도—농장주의 의도이든 자연의 경이든—를 잘 이해하고, 로스팅을 통해 그 의도를 100%에 가깝게 표현하는 일이죠. 커피에서 로스팅은 '추출하여 마시기 좋게' 생두를 익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비슷한 개념으로 스테이크를 적절하게 구워내는 쉐프를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재료가 가진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최적의 요리 방식을 찾아서 실행하는 거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복잡하지만, 단순화시켜서 생각해봅니다.
저희는 커피를 한가지 점수로 정량화하여 평가하고 있지 않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90점짜리 퀄리티의 싱글오리진을 구매했다고 가정해봅니다. 로스팅이 하는 일은 이 90점의 생두가 90점의 원두, 나아가 여러분 앞에 도달하는 90점의 한잔의 커피가 될 수 있도록 온연히 구현해내는 것입니다. 이른 바 '잃지 않는 일'입니다. 일단 생두가 선택되면, 나머지 로스터와 바리스타의 노력은 이 재료가 100% 여러분의 컵에서 아름다운 경험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데 쓰여지는 거죠. 저희가 생각하기에 어떤 마법(?)을 부려 90점의 커피를 100점짜리 커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0점의 감점 요인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가능한 생두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결점이 드러나지 않는 최선의 방법으로 커피를 볶는 것이죠. 좋은 계획도, 좋은 실행 없이는 무용지물입니다.
따라서 로스터리가 재료의 잠재성을 모두 이끌어내는 훌륭한 역량(?)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사실 어려운 전제입니다), 싱글오리진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커피회사의 차별점은 어떠한 커피를 골랐느냐일 것입니다. 즉 커피의 선정, 혹은 큐레이션입니다. 많은 로스터리들이 커핑을 통해서 샘플을 열심히 맛보고, 저마다 마음에 드는 커피들을 잘 고른 이후, 수많은 커피들 중 왜 이 커피를 선정했는지를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합니다. 빈브라더스의 경우 왜 이 커피를 선정하게 되었는지, 농장과는 어떤 관계인지, 마셔보니 어떠한 점이 좋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원두 소개 카드에 담게 되죠. 가끔 같은 농장의 싱글오리진을 서로 다른 로스터리들이 선보이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희 팀은 이럴 때 묘한 기분을 느끼며 커피를 마셔보곤 합니다. 사실 이 감정은 경쟁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저희가 느끼고 풀어낸 커피를, 다른 커피인들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하지만 제철의 과일처럼 제철(seasonal)의 커피가 항상 선정됩니다. 제철의 커피를 커피 업계에서는 뉴크롭이라고 부르는데요, 수확된지 보통 6개월에서 1년 이내의 생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쌀에도 햅쌀이 있듯이, 최근에 수확된 커피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생각하시면 쉽겠네요. 자연스럽게, 싱글오리진은 이번 시즌에만 즐길 수 있는 '한정판'이 됩니다. 올해의 '에티오피아 우라가'가 내년의 '에티오피아 우라가'와 정확히는 같지 않을 겁니다. 즉 싱글오리진에서 수확연도는 나름 중요합니다. 물론 와인처럼 오래 묵혔을 때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죠. 아무리 유명한 농장이더라도 2년 전 수확된 커피를 마신다면, 묵은쌀로 밥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저희는 매월 2-3종류의 신선한 싱글오리진을 선보이는 일들을 8년 넘게 해오고 있는데요, 고된 일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에 앞서 저희가 먼저 즐기고 있는 중독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커피 시장에서는 싱글오리진을 즐기는 비율이 높지는 않은데요, 보다 더 많은 분들이 훌륭한 계절감이 어린 커피를 즐기시기를 기대해 봅니다. 블렌드 "로스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피"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의 90% 이상은 블렌드 커피일 것입니다. 블렌드blend는 말 그대로 섞은 커피로, 여러 종류의 싱글오리진을 조합하여 만듭니다. 초창기 에스프레소 블렌드의 탄생 자체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기인했는데요, 아래 두 가지가 주 연유로 볼 수 있어요.
물론 싱글오리진처럼 소개되고 소비되는 시즈널 블렌드도 있습니다만, 큰 그림에서 싱글오리진과 블렌드에 대한 일반적인 비교를 중심으로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블렌드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들은 인터넷에서도 많이 찾아보실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약간의 검색을!
블렌드는 싱글오리진에 비해 로스터리의 의도가 훨씬 더 많이 반영됩니다.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로스터리가 확연하게 개입하니까요. 단순히 프로세스만 보자면 여러 단계로 나뉠텐테요, 예컨대 A. 어떤 생두들을
B. 어떻게 조합하여
C. 어떻게 로스팅할 것인가 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D. 블렌드가 추구하는 지향점입니다. 해당 커피가 추구하는 방향이나 성격이죠. 이 커피 브랜드는 어떠한 커피를 하고 싶은 것인가? 우리는 어떠한 커피를 좋은 커피라고 여기나? D가 정해지면 A, B, C가 그에 맞추어 달라집니다. 정확히는 D를 가능한 한 잘 구현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 A,B,C에 변화를 주는 것이죠. 어떤 때에는 로스터기의 미세한 화력 조절로, 어떤 경우에는 생두의 비율 변화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블렌드의 재료를 변경하는 방식으로요. 쉐프의 비유로 돌아간다면 선보이고 싶은 요리의 방향성이 명확하게 있는 셈입니다(먹었을 때 이러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 이건 매일매일 먹는 음식이니 자극적이지 않아야 할 것 같아 등). 이를 만들기 위해 그 시점의 최선의 재료들을 수급하고 지니고 있는 도구들을 가지고 최선의 방법들로 구현해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죠. 빈브라더스 블렌드로 'D. 블렌드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살펴본다면 이렇습니다.
로스터리가 싱글오리진을 대할 때 '커피 자체가 지닌 개성을 얼마나 잘, 한 잔의 커피에 담아낼 수 있는지', 즉 구현에 초점을 맞춘다면, 블렌드를 대하는 태도는 이보다 더 적극적입니다. 어떤 개성의 커피가 아름다운 커피라고 생각하는지를 팀에서 토의하고 합의하여 정의하고, 이를 재료 하나하나의 선정부터 시작하여 모든 과정을 성실하게 구현하는, 직접 여러분에게 선보이는 과정 전체를 수행하는 것이죠.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가적인 수많은 제약 조건(지금 구할 수 있는 생두의 종류와 양, 가격, 일반적인 커피인들이 좋아하는 경향 등등)들을 고려해야 하지만, 지금은 큰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넘어가 봅시다. 지향점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올해에도,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지향점은 바뀌지 않죠. 하지만 재료들은 '해당 컨셉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다면' 바뀔 수 있습니다. 훌륭한 로스터리라면 블렌드를 구성하는 커피들이 종종 바뀌는 것은, 역설적으로 일관성을 더 잘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물론 너무 자주 바뀌면 안되겠지만요). 마찬가지로 배전도 —얼마나 더 볶을지(강배전) 덜 볶을지(약배전)— 또한 방법이지, 그 자체로 목표는 아닙니다. 로스팅 정도로부터 제품의 경향 차이가 분명히 있고, 로스터리의 방향성을 유추할 수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더 상위의 컨셉을, 즉 '어떠한 커피를 내려고 하는가'를 관심있게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직접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를 방문할 때에는, 이 다양한 맥락들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블렌드가 지향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커피를 음미하신다면, 좀 더 즐거운 커피 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간단히 요약해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 성훈식 DD, co-founder
오전에는 플랫화이트를, 오후에는 드립커피를 마십니다. 저녁에는 못 마셨었는데, 훌륭한 디카페인 라인업이 생겨 기쁩니다. BB_NEWS 함께할 팀을 찾습니다! 빈브라더스의 원두를 사용하는 카페 고객사들에게 훌륭한 커피 가이드와 비즈니스 가이드가 되어주실 분을 찾습니다. 도매 사업부 바리스타 포지션이 궁금하다면? 👇👇👇 지난 레터에서 설문응답을 통해 많은 분들이 응원과 피드백, 제안을 보내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독자님, 오늘은 어떠셨나요? 글을 정리하다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독자님에게 싱글오리진은, 그리고 블렌드는 무엇인가요? 어떤 이야기든 짧게라도 남겨주세요. 👇👇👇 저는 다음주에 찾아올게요! 소연 드림. |
빈브라더스가 커피를 만들며 알게 된 것들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