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참새님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남이 타 주는 커피
#058. 참새님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 | 22. 05.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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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 안녕하세요, 수요일에 변함없이 찾아온 에디터 모모입니다. 아이스 커피가 간절해지는 푸르른 계절, 충만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책과 글을 기반으로 실험적인 활동을 이어가시는 박참새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참새님이 보내주신 원고를 읽고 미소를 지으며 바로 데릭과 소이에게 공유했어요. 동료들은 어떤 감상을 나눠줄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같은 마음으로 여러분께도 참새님의 <가장 사적인 커피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표정을 지으셨는지, 피드백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도 꼭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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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타 주는 커피
written by 박참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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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커피를 싫어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커피에서 비롯되는 관습이 싫다. 말리고 볶은 과일 열매에서 뭐 그리도 많은 맛이 느껴진단 말인지. 혀가 둔한 나는 도통 모르겠지만 아는 체하며 마신다. 잘 모르니까 가려 마실 수도 없는 것이다. 아무 커피나 주는 대로 잘 마시는 나를 보면서, 하루에 대여섯 잔도 거뜬히 마시는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생긋 웃으며 묻는다.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면 나도 약간 웃어 보이면서 말한다. “네, 싫어하진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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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체 기관으로 기입되는 감각들은 일종의 체험이자 기억이다. 맛을 둘러싼 환경은 너무나도 화려해서 그중 어떤 요소에 의지하냐에 따라 같은 것을 먹어도 전혀 다르게 기억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어디서 먹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가격은 합당했는지, 너무 붐비지는 않았는지, 응대는 적절하고 친절했는지, 그날 입은 옷이 괜찮았는지, 그래서 기분 내기에도 나쁘지 않았는지 - 꼼꼼하게 따질수록 맛이라는 기억을 조작하는 요인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내 기억 속 커피는 그렇게… 퇴색되어 있다.
2.
드립 커피 전문점에서 15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일하며 평생 내려야 할 커피는 다 내린 것 같다. 평생 써야 할 사회성도 다 끌어다 쓴 것 같다. 수십 수백 킬로의 원두를 갈았고, 몇천 개의 필터지를 접고 적시며 버렸다. 어떤 가공방식을 거쳤는지 알아내기 위해 원두를 쪼개고 먹어보고 눈으로 흘기면서 난삽하게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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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내’ 손님이 왔었다. 우리는 서로를 어느 정도 좋아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나의 응대를 바랐고, 나 역시 그에게 내가 내린 커피를 대접하고 싶었다. 호기롭게 포트를 잡고 용감한 마음으로 휘휘 돌렸다. 마치 지팡이로 원을 그리며 주문을 외듯이.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오로지 나를 위해 쓰이고 버려진 많은 물건을 생각한다. 그것들을 생각하면 이제 내가 내리는 커피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쓰인 것에는 무수한 내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사장이 나를 바에서 내치며 말했다. “그렇게 내리면 맛없지.”
나에게는 어딘가 못된 면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여지없이 재단하는 사람을 볼 때면,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꼭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는 모든 면으로 나의 기를 누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인 사람이었지만, 모르쇠, 어쩌라고. 그가 내린 커피와 내가 내린 커피를 번갈아 마셔보았다. 내 것이 월등히 맛있었다. 사장이라는 놈을 (마음속으로만) 한 번 째려보고 내가 내린 커피를 손님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커피를 비롯한 여러 음료를 홀짝이면서 한참 동안 공간을 누렸다. 그리고 나가는 길에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째, 커피가 점점 더 맛있어지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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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는 뭐고 ‘맛없게’는 또 뭔가. 그렇게 내몰아서 내린 커피는 정말 맛있을 것인가? 나는 정말 모르겠어서 커피와 일하는 게 싫었다. 너무 미웠고 너무 못돼 보였다. 말 한마디도 않으면서, 우리는 저 애가 무슨 맛을 가지고 있는지 수십 번을 내려보며 간파해야 한다. 도대체 콩에서 요거트 맛이 나는 게 맞는 일이란 말인가? 마시멜로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제대로 된 파파야를 먹어본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커피에서 온갖 열대 과일의 맛이 난다니. 나는 도대체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렇다니 그러고 만다. 네, 그러네요… 이 커피는 리치(Lychee) 맛이 나요. 정말 신기해요. 그런데 리치가 뭐죠?
3.
커피 일을 관두고 나서는 정말 신물이 났다. 꼴도 보기 싫었다. 집에 있던 커피 도구들을 죄다 팔아버렸다. 누가 물만 부으면 그만인 드립백이라도 선물할라치면 온 신경이 곤두섰다. 왜냐면 내게는 잠재적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오래 살지는 몰라도, 그게 몇 년이든 몇십 년이든 상관없으니까 이제 두 번 다시는 내 손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이 다짐은 아직도 유효하고 유효할 것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내가 만든 커피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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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싫어하지 않는다고 해서 좋아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여기에는 본질적이고 미묘한 차이가 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우리들의 애매한 마음이다. 나는 시골 읍내에서 파는 1,300원짜리 커피도, 스페셜티 전문점에서 파는 9,500원짜리 커피도 잘 마실 수 있다. 심지어 둘 다 맛있다. 맥카페의 다크한 로스팅에서 나오는 바싹 타버리기 직전의 그 쌉쌀한 맛도, 자주 가는 카페에서 블렌드한 와인 같다는 맛도, 내게는 별 차이 없이 다 맛있다. 내가 내린 커피가 아니라면, 내가 아니라 당신이 만든 커피라면, 나는 다 괜찮다. 몇 잔이고 몇 번이고 계속 마실 수 있다.
커피 맛은 잘 몰라도, 그것을 만들 때 무슨 마음인지 조금은 안다. 아주 최소한일지라도, 거기에는 작은 소망 같은 것이 담긴다. 적지 않은 돈으로 사 마시는 이 커피가 조금의 값어치라도 하기를, 그래서 당신이 다시 와주기를, 그때에는 우리 작은 대화라도 나눠볼 수 있기를.
“저번에 드셨던 커피, 괜찮으셨어요?”
“네, 정말 맛있었어요. 오늘도 주시는 걸로 마실게요. 고맙습니다.”
퇴색되었던 ‘커피의 맛’이라는 기억이 점점 빛깔을 찾아간다. 오색찬란한 플레이버 휠처럼. 내가 먹어본 적 없는 재료의 맛일지라도, 당신이 최선을 다해 묘사해주는 그 맛이라면 알 것만 같다.
나는 커피가 싫다. 내가 만드는 커피 말고, 당신이 만들어주는 그 커피가 좋은 것이다. 남이 타 주는 커피의 맛은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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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플레이버 휠 ©counterculturecoff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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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실재서점 모이 Virtual Bookstore moi를 운영하며 책과 가까이 지낸다.
책과 글에 관련된 일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곧 가려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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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 저는 커피 학원 강사였는데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공감합니다ㅜㅜ 겸손, 팀워크, 배움의 자세, 고정관념과 불필요한 습관과 고집 버리기!!!! 백 번 강조해도 모자란 부분이죠. 어떻게 바리스타가 되는지 궁금한 모든 사람이 이 글을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인터뷰 형식이라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셨지만 정말 바리스타를 꿈꾸시는 분들을 위해 매운맛 인터뷰도 있었으면 좋겠어요ㅋㅋㅋ 매번 면접에서 떨어지던 학생들이 생각나네요... 여러분!!! 탈락한 이유를 이제 아시겠습니까????(가리봉아이유)
💌 커피에 열정이 솟아나 다양한 커피 전문점 도장깨기를 다니던 어린 시절, BB의 지점을 방문할 때마다 '나도 바리스타..도전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해주셨는데 (결국 집에서 가까운 스벅 들어갔다 퇴사ㅋㅋㅋ 지금은 완전 다른 일합니다) 다시금 커피 관련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었습니다.(kally)
💌 BB는 고객과 함께 공동체를 가꿔나갈 사람을 바리스타로 채용하는구나 느꼈습니다.(느긋한 자란)
💌 커피 업계 종사자로서 다시금 나의 위치, 나의 역량, 나의 팀, 나라는 사람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감사합니다:) (Ordinarydayryng)
💌 썸머 바리스타님 너무 멋져요... 자부심을 가지고 단단하게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인데, BB에 그런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레터를 통해 잘 알게 돼요. 다른 업계에서 일하지만 느낀 바가 많았답니다.(도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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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은 메일은 지워주세요. 메일함을 비우는 것만으로도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커피 생활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지난 BB레터는 빈브라더스 뉴스레터 아카이브에서 언제든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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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닐라 라떼는 공부의 시작을 알리는 의례이자, 졸지 않고 하루를 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수험 생활 중에도 자신의 선호와 취향을 지키게 해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했다.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하루의 실패를 정리하고 또 다른 하루를 살 깨끗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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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채워야 하는 과정을 견디고 마시는 커피 한 잔. 삼시 세끼가 아닌 삼시 세커. 커피가 업(業)은 아니지만, 커피로 업(Up)하는 사람. 커피 인간이 되어버린 나의 커피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 BB레터 #054 | 박찬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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