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업계의 권력 관계 읽어보기.
커피 하는 우리가 더 알고 싶은 이야기 BB Letter #010 | 2021. 6. 2. 어느 업계에나 구조적인 권력 관계가 있습니다. 커피는 그 대표주자 중 하나입니다. 생산은 개발도상국에서, 소비는 선진국에서 하죠. 그리고 이런 판을 바꿔가려고 오랫동안 힘써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갑자기 웬 거대담론인가 싶으시죠? 오늘 소개드릴 글에 담긴 '커피 생태계의 구조와 지속가능성' 같은 주제가, 생두 소싱 일을 시작하고도 제겐 한동안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했거든요. 그러다가 업계 선배님들과 파트너 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슴 뛰는 구체적인 장면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실감이 나면서 제 관심사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그 중 기억나는 것 하나는, 이미 비어있는 지갑을 털어서 더 힘든 친구한테 건네는 듯한 장면이에요.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로 줄줄이 취소된 거래 때문에 이미 현금이 바짝 마른 생두 수입업체가, 기초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소농 커뮤니티의 커피를, 맛도 보기 전에 구매하기로 결정하는 장면. 지지하고 믿어주는 마음을 표현하는 뜨거운 자본.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싶었어요. 그 장면 속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로 비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국 팔콘 커피Falcon Coffees 팀과, 코스타리카 여성 소농들의 빽이 되어주는 빈보야지Bean Voyage의 탁승희님처럼 다정한 미소로 비범한 의사결정을 지치지 않고 계속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보입니다. 최근 이런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한 데릭의 글을 읽고, 독자님과 꼭 함께 읽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이런 장면들이 왜 그렇게까지 비범하게 느껴졌는지, 더 거대한 판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이건 어디서 기인한 건지에 대해 큰 그림에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읽고 나면 답보다 질문이 더 많아져 있을 독자님과, 앞으로도 이 이야기와 고민을 오래 이어가고 싶어요. 스페셜티 커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김민수 Derek | 2021. 1. 21.
미국 스프럿지 미디어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루시아 솔리스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케이브에게 추천 받아서 에피소드 8개를 후다닥 들어봤는데, 내용이 알차고 좋습니다. 일단 내용이 와인과 커피를 오간다는 점이 재밌고요. 구글링으로 찾기 힘든 커피 발효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유일한 단점은 영어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서 잘 안 들린다는 점이에요. 아, 그리고 루시아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참 좋은데, 운전할 때 들으면 약간 졸려서 조심해야 합니다. 갑자기 무슨 팟캐스트 소개냐 하실텐데, 제가 최근에 이 두 팟캐스트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은 후에 든 생각들이 있어서 여러분과 한번 나눠 보려고요. 직접 키운 커피의 수준을 구매자에게 물어봐야 안다? <메이킹 커피>의 한 에피소드에서 루시아가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녀가 와인 업계를 떠나고 커피 업계에 들어오고 나서 놀란 점이 하나 있었대요. 그것은 바로 '커피를 구매하는 사람이
그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커피에 대해 더 잘 안다는 점'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커피 구매자는 스페셜티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인 커피 바이어, 로스터리, 바리스타와 같이 커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일반 소비자들 말고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루시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농부들이 자신들이 재배한 커피를 제대로 마셔보지도 못하고 지역 내 워싱 스테이션이나 수출업체에 넘긴다고 하죠. 이카와Ikawa*와 같은 로스터를 갖고 있거나 제대로 커피를 평가할 수 있는 센서리 스킬*을 가진 농부들이 매우 적기 때문에, 만약에 자신들이 수확한 커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다면 그 커피를 구매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커피 업계는 자본력을 갖춘 일부 농장들을 제외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루시아는 이런 현실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갖고, 커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지식 격차를 줄이는 일을 자신의 커리어로 삼게 된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적힌 그녀의 직함은 커피 밀 컨설턴트Coffee Mill Consultant입니다. 커피 업계는 왜? 커피 업계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곧잘 와인 업계와 커피 업계를 비교하지만 둘 사이의 차이점은 꽤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로 많이 거론되는 것은, 와인은 생산국과 소비국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커피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생산되는 커피들은 많은 양이 유럽이나 북미로 수출이 되죠. 국내 커피 소비가 많은 에티오피아가 예외에 속하는데, 그래도 전체 커피 생산량의 절반 가량이 수출된다고 합니다. 또 하나 거론되는 점 하나는, 많은 와인 산지들이 선진국에 있는 반면 커피 벨트에 있는 주요 커피 생산국들의 경우 대부분 소비국에 비해서 소득수준이 아주 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르완다의 농부가 이카와 로스터로 자신의 커피를 로스팅하고, 커핑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죠. 로스팅은 커피 소비국에서 주로 이뤄지고, 르완다의 스페셜티 커피를 소비하는 나라들은 대개 꽤 잘 사는 나라들이 아닐까요.
세계 커피 주요 생산국 vs 소비국 녹색 계열이 생산국, 노랑/갈색 계열이 소비국으로 대부분 분리돼있다. © offchance. World Coffee Production and Consumption 지금의 커피 업계에서 나타나는 생산자-소비자 구조는 유럽 열강들이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주의 시대에서 기원합니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나라들이 아프리카와 중남미 곳곳을 들쑤시고 다닌 시대였죠. 현대에 이르러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식민지배는 끝이 났지만, 그 나라들에 미치는 그들의 경제적인 영향력은 여전히 상당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자주 거래하는 메르칸타Mercanta나 트라보카Trabocca와 같은 생두 수입업체들이 각각 영국과 네덜란드 회사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겠죠. 다만 미국이 중남미 커피의 주요 소비국으로 부상하는 바람에 미국 생두회사들이 중남미에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이 그 구도에 생긴 변화라면 변화일 것입니다. 커피 시장의 갑과 을 <인 굿 테이스트>에서 에버 마이스터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많은 커피 회사들이 활짝 웃는 농부들의 모습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종종 올리는데, 자신은 그걸 보며 식민 지배 시대가 연상된다고요. 물론 농부들과 합의 하에 올렸다면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버는 '그게 정말 합의가 된 걸까' 혹은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식의 마케팅이 옳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미국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저는 왠지 살짝 삐딱하게 듣게 되더라고요. 이런 문제의식이 미국이 유럽과는 달리 식민지배에 대한 죄의식을 상대적으로 덜 가져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저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충분히 의미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요는, 현재 커피 생산자들이 처하게 된 상황이 식민지배시대에 형성된 이후 꽤 오랫동안 공고해진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난 후, 커피 바이어들이 쓴 농장 방문기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그들이 농장을 방문할 때 지역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것 같은데요.
저는 6.25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던 그 시절에, 미군 부대를 보고 반가워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미군들이 사탕이나 과자를 던져주면 그걸 받아 행복하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들을요. 물론 저는 여전히 그 농장 방문기에 담긴 진심을 믿는 편입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 그들이 좋은 거래를 하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팟캐스트를 들으며 앞으로는 커피 바이어와 농장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었을지도 모르는 권력관계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마 생각만 하고 말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커피업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판을 바꾸는 사람들 농장과 거래를 함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생두 업체들 이야기를 종종 보고 듣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저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생각하고 말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메이킹 커피> 팟캐스트를 통해, 실제로 산지를 다니며 커피 생산자들을 만나는 사람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이 좀 더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어디선가 읽었던, 커피에 얼굴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던 커피 전문가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루시아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커피 생산자들이 커피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록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퀄리티는 좋아질 것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농부들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가공하며, 수확 후에 농장에서 샘플 로스팅한 커피를 동료 농부들과 테이스팅하고 토론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스페셜티 커피가 다음 단계로 진보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기저에는 농부들에게 적절한 커피 가격을 지불하고, 커피 지식을 교육하며, 그들과의 지속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추구해온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__ 김민수 Derek, 연구원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때때로 그 커피에 대한 글을 씁니다. 에티오피아 커피를 좋아해서 언제 한번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장에 가보고 싶습니다. 독자님, 이번 레터는 어떠셨나요? 데릭이 이야기한 '스페셜티 커피의 다음 단계'가 온다면, 우리 앞에 놓인 이 커피가 여기 오기까지 거쳐온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이야기가 (마케팅 소재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진짜 관심사가 되는 날이 될 것 같아요. 오늘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면 짧게라도 남겨주세요. 다음 주 수요일에 만나요! 소이 드림. 덧. BE.LETTER 통해 처음 받아보신 분들 계시죠? 어서오세요! "... 원두 이름도 잘 모르는 에디터가 보기엔 원두 이름 마냥 어려운 말들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BB Letter>가 배움과 영감을 주는 건, 커피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커피를 만드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배움과 영감은 이를테면 '무심코 주문한 '덜 신 아.아 한 잔'에도 정말 많은 고민과 집착이 담겨있겠구나'하는 느낌입니다." 아무쪼록 점점 더 넓은 커피 커뮤니티와 함께 자라가는 BB레터가 되길 꿈꿔봅니다. |
빈브라더스가 커피를 만들며 알게 된 것들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