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포푸리 홍세인 작가 인터뷰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을 만났습니다. 바로 올해 개화 일러스트를 그린 스튜디오 포푸리의 홍세인 작가입니다. ‘이야기’하면 말과 글을 먼저 떠올리던 저에게, 일러스트가 얼마나 탁월한 이야기 장르인지 깨닫게 해준 분이었어요.
오늘 레터에서는 최근에 홍세인 작가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원래 개화 일러스트에 관한 가벼운 소회를 나누려던 대화는 홍세인이란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으로 조금 더 들어가고 말았는데요. 창작하는 사람들과 창작물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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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와 말레이시아
Derek 세인님, 반갑습니다. Bb레터 독자님들께 인사 한번 해주실래요?
Sein 안녕하세요, 올해 개화 일러스트를 작업한 스튜디오 포푸리의 홍세인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과 리소 인쇄 작업을 주로 하고, 때때로 편집 디자인도 하고 있어요.
Derek 얼마 전에 빈브라더스와 포푸리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어요. 둘 다 십여 년 전에 홍대 근처에서 시작했더라고요.
Sein 그렇네요. 저도 학교 다닐 때 빈브라더스 합정점에 다녔던 기억이 나요. 공통점을 찾아주셨으니 하나 꺼내보자면, 저도 말레이시아와 작은 인연이 있어요. 국제한국어교육재단에서 한국어 교과서를 만들어 전세계에 배포했는데 말레이시아판도 만들었거든요. 그 책의 편집을 맡았어요.
Derek 말레이시아와 연이 있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말레이시아는 한국인이라면 낯섦과 익숙함을 모두 느끼게 되는 흥미로운 나라지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다음으로 미룰게요(웃음).
그동안 빈브라더스에 대해선 어떤 인상을 갖고 계셨어요?
Sein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전 합정점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있고요. 비교적 선명한 인상은 이번에 작업 의뢰 해주신 후에 열심히 들여다 보면서 생긴 것 같아요. 주로 시각적인 것인데요. 로고와 제품 패키지를 보면 엄청 정갈하고 깨끗한 그래픽 작업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았어요. 뭐랄까, 북유럽 느낌이 난달까요.
예전에 상수동 커피하우스를 밤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바(bar)가 있는 층에 갔더니 왠지 ‘늘 마시던 걸로 주세요’라고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 거예요. 엄청 ‘부자 카페’ 같은 느낌이 나고, 예전에 제가 알던 빈브라더스와 다른 느낌이라 놀랐어요. 그 후에 개화 일러스트 미팅하러 낮에 왔더니 또 느낌이 친근하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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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커피하우스 건물의 분위기가 정말 세요. 바가 있는 6층은 건물 본연의 아우라를 살린 편인데, 라운지 역할을 하는 7층은 마루 바닥과 다양한 가구들로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더했어요. 오래 전부터 빈브라더스를 아시는 분들과, 커피하우스를 통해 빈브라더스를 아시게 된 분들의 반응이 달라서 흥미로워요.
세인님의 커피 생활이 궁금한데, 평소에 커피를 즐겨 드세요?
Sein 예전에는 커피를 잘 몰랐고, 제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제가 최근에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매일 집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주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어요.
Derek 커피와 일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종종 커피와 차를 비교해보는데요. 차는 휴식과 어울리고, 커피는 일과 어울린다고 느껴요. 15세기 예멘의 수도사들이 밤샘 기도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 했을 장면들을 상상하면 태초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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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브라더스와 포푸리
Derek 너무 멀리 갔네요(웃음). 다시 개화 이야기로 돌아와볼까요. 개화 일러스트 작업 의뢰 받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해요. ‘왜 저를 고르셨나요?’라고 물어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Sein 기존 빈브라더스의 시각적 인상과 제 그림이 잘 맞을까 싶어 여쭤봤어요. 커피하우스에서 디렉터 서영님과 디자이너 지원님을 만나 미팅을 했는데요. 제가 계속 여러 그림을 보여드리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여쭤보니 다 괜찮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여기에 유머나 위트가 들어가도 되는지도 여러 번 확인을 했는데 그것도 괜찮다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세 가지 시안 후보를 그려 보내드렸는데 예상 외로 많이 좋아해주셔서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아요. 제가 원래 그리던 그림의 스타일을 이어갈 수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했고요.
Derek 포푸리의 스타일이 좋아서 의뢰드렸던 거라 저희는 원래 하시던대로 작업해주시길 기대했어요.
클라이언트 작업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요청사항이 있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Sein 네, 종종 있죠. 제가 맞춰드릴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맞춰드려요.
가끔 난처할 때가 있긴 해요. 제 그림 톤을 모르고 작업을 의뢰하셨는데, 원하는 스타일이 명확하게 있으신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노력해도 잘 그리지 못할 것 같거나, 저보다 잘할 분이 떠오르면 고민이 많아지죠.
Derek 오, 세인님이 잘 못 그릴 것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는 어떤 거예요?
Sein 저는 보통 라인을 그리고 그 안에 채색하는 식으로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색연필로 그린 것처럼 따뜻한 느낌의 일러스트나 수채화처럼 표현하는 걸 제가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또 다른 예로 사랑이나 배려, 희망 같은 따뜻한 감정을 담은 그림을 잘 못 그리겠어요. 제가 그리는 그림속 인물들은 무표정한 편인데, 환한 미소를 띠도록 바꿔달라고 요청하실 때면 참 어려워요.
Derek 흥미롭네요. 온도로 따지면 세인님 작품들은 따뜻하기보다는 상온에 가까운 편일까요?
Sein 희망차거나 따뜻한 것과는 또 다른 인간적인 느낌 같아요. 저는 작업할 때 재미를 추구하는 편이고, 그림에 유머러스한 요소가 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굉장히 따뜻한 그림은 그리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Derek 저도 ‘유머’가 포푸리의 작품에 있어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세인님이 발휘할 수 있는 유머러스함이 100%가 있다면 이번 개화 일러스트에는 얼마나 들어간 것 같으세요?
Sein 꽤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할 때와 클라이언트 작업할 때의 100%가 다르긴 한데, 클라이언트 작업의 최대치까지는 한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은 안 웃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재미있게 작업했어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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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일러스트
Derek 그럼 자연스럽게 개화 일러스트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처음에 세 가지 시안을 보내주셨잖아요. 서영님이 사내 메신저 슬랙에 ‘귀여움 주의’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남겼는데, 처음 보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나요. 최근에 저희가 보여주던 시각적 인상과 꽤 다른 모습이어서요. 과연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결국 보내주신 세 개의 시안을 모두 사용하진 못 했어요. 하나는 제품 라벨과 포스터가, 다른 하나는 책갈피가 되었죠. 이 자리를 빌어서 각 시안을 어떻게 작업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Sein 저는 보통 작업할 때 텍스트를 먼저 생각한 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편이에요. 개화의 경우 미팅 때 노랑, 분홍, 연두 같은 색깔들, 그리고 꽃이나 과일 같은 단어들을 말씀해주셔서 적어뒀고요. 그걸 토대로 아주 짧은 글들을 지어봤어요.
제품 라벨로 선정된 시안의 예를 들면, 마시는 사람이 꽃이 된 것 같은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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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시안의 경우 ‘봄 소풍’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니, ‘커피 소풍’이라 적어놓고 그림을 그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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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하나의 시안은, 그냥 유머로 ‘긴 빨대’를 그리고 싶었어요. 당시에 개인 작업으로 긴 책을 만들고 있었거든요. 미팅 때 알려주신 단어와 조합해서 봄에 긴 빨대로 커피 마시는 이미지를 그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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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긴 빨대’ 시안은 저희 팀 내에도 재미있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일러스트가 실릴 제품 패키지 라벨이 작은 편이라, 시안의 디테일한 재미를 온전히 보여주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해서 아쉽게도 고르지 않게 되었어요.
저희 인스타그램에 세 가지 시안 올린 거 보셨죠? 셋 중에 어느 시안이 개화의 일러스트로 선정되었을지 팔로워분들께 여쭤보았는데, ‘긴 빨대’ 시안일 거라고 예측하신 분이 많더라고요.
Sein 네, 재미있게 보았어요. 저는 세 가지 시안 다 마음에 들어서 보내드린 거라 어떤 게 선정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완성되지 않은 버전을 이렇게 활용하시는 경우가 드물어서 재미있었어요.
Derek 댓글 달아주신 많은 분들의 예상과 달리, 정답은 커피 마시는 사람이 꽃이 되는 시안이었네요. 저는 실제 제품에 라벨이 붙은 모습을 봤을 때 좋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멋진 작업물을 실으려고 제품 패키지를 이렇게 바꿨었지’ 하는 되새김도 함께요.
Sein 이번 개화 작업을 연초에 의뢰해주셨는데요. 올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계기가 되어준 작업이었어요. 올해 하는 일들이 다 이렇게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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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푸리의 11년
Derek 이제 개화 일러스트에서 잠시 나와서, 11년 전 스튜디오 포푸리가 시작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에 앞서 포푸리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모든 게시물을 한번 다 보았거든요. 2014년에 첫 게시물을 올리셨던데, 그 당시 작업들은 요즘 작업하신 것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지난 11년을 돌이켜 보면,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변화 혹은 성장해왔다고 느끼세요?
Sein 평소에 ‘진짜 오래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그런데 그 시간의 길이가 잘 체감되지는 않아요. 그냥 하다 보니까 지금에 이르게 된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스튜디오를 오래 유지했냐고 물어보시는데, 원하시는 답을 드리기가 쉽지 않아요.
Derek 아무래도 1인 스튜디오라 눈앞에 닥친 일들 해치우기에도 바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Sein 그래도 그 시간을 통해 잘 배운 게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에요.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잘 포착하고, 내가 원하는 것도 잘 전달하는 것이요. 클라이언트와의 일정 조율 같은 기본적인 것들도 있고요.
제가 대학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영문 전공명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었어요. 실제로 필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왜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어를 사용하는지 와닿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Derek 재미있네요. 세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자인의 시작은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군요.
Sein 중간에 그림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어요. 대단한 시도를 한 것은 아니고요. 엄청 반듯한 선을 조금 구불구불하게 그린다거나, 평소와 달리 약간 수채화처럼 그려본다거나 하는 것이었는데요. 억지로 다른 스타일을 시도했더니 너무 힘들고 그리는 재미가 덜한 거예요. 원래 제가 그리던대로 그리는 게 제일 편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죠.
이번 개화도 그렇고, 평소 작업할 때 ‘일단 펜을 잡아보자’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제가 제일 편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게 가장 좋게 느껴져서 앞으로는 클라이언트에게도 그렇게 제안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억지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려고 하지 말자는, 일종의 포기 혹은 욕심 버리기를 하면서 최근에 작업하기가 편해졌어요. 아마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분들도 같은 주제로 고민이 많지 않으실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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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푸리의 스타일
Derek 오늘 제일 여쭤보고 싶은 주제는 포푸리의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포푸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작가가 누군지 모른 채 봐도 포푸리의 작업임을 알아챌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너는 왜 너야’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포푸리 스타일은 어디서 왔을까요?
Sein 시각적인 특징은 대학교 3·4학년 때부터 계속 쌓아온 것 같아요. 당시에도 일러스트 작업을 많이 했고, 졸업 전시 때는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펜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기라 주로 단색으로 그리고 약간의 색을 추가하는 정도로 작업을 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애플 펜슬’이 나오면서 채색하기가 수월해져서 더 많은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웃긴 고민인데, 여름 방학에 사람과 동물의 눈을 어떻게 그릴지에 꽂혀서 엄청 많이 그려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눈의 생김새에 따라 그림이 되게 달라 보이는 거예요. 그때부터 눈에 집중해서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시작했는데 (데릭 노트에 직접 눈을 그리며) 눈을 그리는 스타일이 작가마다 다양하더라고요.
그런 고민의 시기를 지나고, 요즘에 제가 그리는 눈은 육각형 눈이에요. 대학교 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리고 있는 것 중에 하나고요. 이렇게 그때 그때 좋다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쌓아오면서 지금의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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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가끔은 왜 그런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세인님 작업들을 보면 갖고 있는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에요?
Sein 사회를 향한 메시지처럼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보단 그냥 가끔 하는 웃긴 생각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노트에 적어 두는데, 보통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생각일 때가 많아요. 서사가 있기 보단 기승전결의 ‘기승’ 정도까지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런 이야기들이 되게 재미있게 느껴져요. 그래서 이런 나의 발견을 자랑하고 싶고, 또 보여주고 싶은데 저에게 편한 표현방식이 일러스트라서 지금까지 그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Derek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군요.
Sein 그런데 제가 좀 게으른 편이라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한없이 노트에만 쌓아두고, 세상에 내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어요.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부족해서 아직 꺼내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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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아이디어의 재고가 쌓이고 있군요(웃음).
Sein 네, 그래서 스스로 일정을 짜서, 무리스럽더라도 신작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해요.
Derek 클라이언트 작업이 창고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세상에 내보내 주는 역할을 할 때도 있겠네요.
Sein 네. 예전에는 클라이언트 작업과 개인 작업의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번 개화 일러스트처럼 운 좋게 개인 작업의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연차가 쌓일수록 개인 작업과 클라이언트 작업의 경계를 너무 뚜렷하게 두지 않고, 개인 작업하듯이 외주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Derek 빈브라더스와의 작업이 그런 케이스였다니 기쁘네요. 개인 작업과 클라이언트 작업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겠지만,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일 것 같아요.
Sein 사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희망하지 않을까요. 클라이언트 작업에서 개인적인 창작욕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면, 개인 작업에 너무 목매지 않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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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디자인
Derek 지난 11년 동안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세속적인 표현이긴 한데, ‘잘 팔리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어떠신지도 궁금해요. 실제로 판매가 잘 되는 걸 수도 있고, 클라이언트에게 어필하는 걸 수도 있을 텐데요.
Sein 제가 페어를 계속 나가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제 작업에 대한 반응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서 페어에 나가는 걸 되게 재미있어 하거든요. 거기 서 있다 보면, 일단 사람들이 귀여운 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귀여움에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원초적이고 단순한 즐거움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너무 귀엽기만 하면 또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귀여움에 약간의 엉뚱함이나 기괴함이 더해지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Derek 귀여움에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는군요.
Sein 네, 사실 그냥 예를 든 거긴 해요.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많이들 그렇겠지만 저도 제 작업에 완벽히 구현할 수는 없어요. 그런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거니와, 제가 하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다행히 제 작업이 대중적인 선호와 아주 거리가 멀지는 않은 것 같다고 느껴요. 컬러풀한 일러스트기도 하고, 리소 인쇄를 하다 보니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어느 정도 계시긴 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에요.
Derek 포푸리의 작업 중에 상대적으로 잘 팔렸던 건 어떤 거였어요?
Sein 몇 년 동안 캘린더를 만들었는데, 그게 많이 팔렸어요. 제 작업 중에 실용성이 더해진 것들이 확실히 반응이 좋은 것 같고요. 반대로 책은 정말 소수의 분들이 깊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Derek 엇, 저도 인스타그램에서 포푸리 캘린더 보고 사고 싶단 생각을 했었어요.
Sein 작년 ‘서울아트북페어’의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나가서 느낀 게 있어요. 재작년까지는 매년 새로운 캘린더를 만들어 판매를 했거든요. 특이한 형태이고 만화처럼 구성된 캘린더라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주셨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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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작년에는 책 작업을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캘린더를 새로 만들지 않고, <코스믹 마트료시카(Cosmic Matryoshka)>라는 책을 만들어서 페어에 나갔죠. 그런데 전년도 매출에 비해서 훨씬 적게 나온 거예요. 예상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책보다는 실용성이 있는 굿즈에 더 반응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신 책은 깊게 들여다봐 주시는 분들이 계시죠. 책을 낼 때마다 느끼는 감사함과 뿌듯함이 있어서 뭐가 더 낫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때 그때 제 마음이 가는대로 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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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저도 둘 중에는 캘린더를 살 것 같긴 한데…(웃음) 내용과 형식 모두 재미있어 보였어요.
Sein 사실 캘린더는 부수적인 기능이고, 그 안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예전 인터뷰에서도 캘린더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게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드렸어요. 굿즈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봐주시길 바랐나 봐요.
Derek 책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으세요?
Sein <코스믹 마트료시카>도 글 반, 그림 반인 책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쓸 수 있는 한계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엄청 긴 글을 쓰기는 힘들 것 같고, 써도 짤막짤막한 글들이지 않을까…
Derek 일러스트 작업 방식도 그렇고, 책에 대한 애정도 그렇고, 세인님에게 글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Sein 네, 조금 부끄럽지만 어릴 때 웹소설이 유행해서 혼자 글을 지어보기도 했어요(웃음).
Derek 웹소설을 읽는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써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텐데, 세인님 안에 분명 글이 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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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포푸리
Derek 2015년에 시작한 스튜디오 포푸리가 어느덧 10년을 넘겼어요. 다음 10년에 대한 상상도 하세요? 어떤 모습이면 좋을 것 같으세요?
Sein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루 단위로 관심사가 달라질 정도로 좋아하는 게 금방 바뀌는 편인데요. 십몇 년 동안 하고 있는 게 지금 일이거든요. 아직까지 흥미를 잃지 않은 걸 보면, 이걸 업으로 하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 싶고요.
10년 뒤를 훌쩍 넘어서, 70대가 되었을 때도 이 일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조금 두려워져요. 주위에서 사례를 잘 못 봐서요. 그런 두려움이 있다는 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뜻이겠죠.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지만, 외국에는 오랫동안 리소 인쇄를 해온 스튜디오가 있어요. 네덜란드의 크뉘스트 프레스(Knust Press)라고 , 60대 분들이 하시는 스튜디오가 있거든요. 80년대에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계신데, 그분들처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Derek 리소 인쇄의 선구자 같은 분들이시군요. 저는 인생에 롤 모델이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취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방향으로 지난 10년처럼 잘 해나가시면 결국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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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이의 정체
Derek 자, 이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이에요. 개화 일러스트의 주인공이자, 포푸리의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뽀글이는 몇 살인가요?
Sein 글쎄요… 나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평소에 제 주위에 있는 것들을 가끔 그림에 넣는데, 보통 제 나이대라고 생각하고 그리는 것 같긴 해요.
성별에 대한 생각은 있었어요. 보통 머리가 짧으면 남자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저는 남자라 생각하지 않고 그렸거든요. 어느 시점부터 캐릭터의 성별이 안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자처럼 보여도 여자일 수 있고, 여자처럼 보여도 남자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그려온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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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rek 왠지 바보 같은 질문으로 인터뷰를 끝내고 싶어서 드린 질문이었는데, 덕분에 듣게 된 성별 이야기에 울림이 있었어요. 저는 뽀글이가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머리 길이만 보고 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살펴 보니 남자로 볼 이유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쭤보길 잘했네요.
오늘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를 할까봐요. 개화 덕분에 세인님과 일러스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세인님의 무대가 열리면 놀러갈게요. 그때는 꼭 캘린더를 사고 싶어요.
Sein 네, 저도 인터뷰 하게 되면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오늘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Derek 아, 저번에 다녀가신 ‘부자 카페'에서 요새 봄 차를 판매하고 있는데 한번 드시러 오세요. 개화에 영감 받아 만든 차를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Sein 네, 너무 늦지 않게 놀러갈게요. 그때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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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홍세인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게 있어요. 생각이 명료한 사람과의 대화가 얼마나 즐거운지, 그리고 쉬운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편안한지요. 자신의 이야기 방식으로 '일러스트'를 고른 것은 그와 참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빈브라더스의 커피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기호 식품이 으레 그렇듯 마시기 전에는 실체를 알기 어려운 게 커피지만,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 때도 있거든요. 포푸리 일러스트의 쉽고 위트있는 표현에 좋은 힌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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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브랜드콘텐츠 리드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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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레터 피드백
문예: 7년간 기다린게 무엇이냐는 심오한 질문 뒤 구체적인 기다림의 이유를 나열한 글이라니..! 재밌게 읽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덕후가 있지만 커피 머신 덕후(?) 동료의 이야기가 유독 재미있었던 건 레터속 주인공의 설렘과 기대가 느껴졌기 때문인것 같아요. 머신으로 마음껏 추출을 하던 때가 생각나는 레터였습니다:)
우야: 7년을 기다리셔서 그런지 바리스타님 굉장히 행복한 표정이시네요. 전 기계치라 그런지 귀여운 빈브라더스의 에스프레소잔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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