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커피하우스에서 대만 징롱 농장의 커피와 차를 소개했습니다. 같은 농장에서 커피와 차를 모두 재배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짧은 기간이지만 판매했던 것인데요. 커피는 게이샤 허니를, 차는 우롱차와 밀향홍차를 준비했습니다. 많은 양을 준비하지 못해 실제로 경험하신 고객은 몇십 분 정도였던 것 같아요.
징롱 농장과의 인연은 우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실제로 판매하기 두 달 전인 8월에 로사가 대만에 컵 오브 엑셀런스(Cup of Excellence) 심사를 하러 갔었어요. 심사가 모두 끝나고 대만 아리산에 위치한 한 농장을 방문했는데 그것이 징롱 농장이었습니다. 현지에서 마신 커피와 차의 품질이 모두 좋아서 로사는 커피하우스에서 한번 소개해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대만 아리산 징롱 농장
출시를 앞두고 팀이 모여 같이 테이스팅을 해 보았는데, 이 농장의 커피와 차가 서로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농장의 제품이라 가진 선입견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구석이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마시는 것보단 커피와 차를 함께 맛보는 경험을 고객분들께 권해드리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펙트럼: 징롱’이란 이름으로 커피와 차 세트를 출시했습니다.
‘스펙트럼: 징롱’의 메뉴
출시한 징롱의 커피와 차를 마시고 가장 먼저 반응을 들려준 것은 Bb 팀원들이었습니다. 아마 대만의 커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고, 차도 함께 있으니 다들 궁금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팀원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대체로 아래 두 가지였는데, 제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커피가 안 좋은 건 아닌데 게이샤 같지가 않더라.’
‘우롱차는 농도가 연해서 그런지 밋밋하더라.’
팀원들의 반응이 공감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징롱 게이샤의 경우 녹차와 레몬의 싱그러움을 은은하게 즐기는 커피였습니다. 어떤 게이샤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재스민이나 복숭아 향을 기대했다면 충분히 아쉬워할 만했지요.
우롱차 역시 한 모금을 맛있게 마시기보다 한 잔 전체를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농도로 잡았던 터라 연하다고 느낄 만했습니다. 어쩌면 커피보다 적은 양의 물로 여러 번 우려 마시는 차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서 생긴 것이 본질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요.
다만 이번에 준비한 징롱 게이샤와 우롱차가 가진 은은하고 편안한 매력이 마신 분들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사실은 개인적인 것이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요.
징롱 농장의 게이샤 허니, 우롱차, 밀향홍차
캐릭터가 분명하고 선명한 테이스팅 노트를 가진 커피를 마시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무난한 커피와 마시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아쉬운 커피를 마시다가, 꽃과 과일이나 견과와 초콜릿이 쉽게 떠오르는 커피를 마시면 눈이 번쩍 떠지고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명한 커피를 한참 마시다가 기본에 충실하고 상대적으로 얌전한 커피를 마시게 되었을 때 오는 만족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내추럴보다는 워시드가 그렇고, 동아프리카보다는 중남미 커피가 그런 만족을 주는 듯합니다. 어떤 날에는 과일 주스 같은 커피를 마시고 싶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달콤함만으로 승부를 보는 커피를 즐기고 싶기도 합니다.
저희가 평소에 출시하는 커피는 대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선명함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은은한 매력의 징롱 게이샤와 우롱차에 차별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본기는 확실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징롱 게이샤는 그렇게 얌전(?)하기에는 무척이나 비싼 커피였습니다. 고가의 커피에 인상적인 경험을 기대하는 것과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죠. 한 잔에 2-3만 원 하는 파나마 게이샤를 마시고 아쉬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파나마 게이샤도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됩니다.
징롱 게이샤 출시 전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생각해 봅니다. 커피의 인상이 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차와 페어링한 것은 여전히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지만, 더 많은 물량을 출시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쓰다가 문득 제가 예전에도 비슷한 글을 썼던 것 같은 기억이 나서 Bb레터 아카이브를 뒤져 보았습니다. 역시나 2022년에 <게이샤의 추억>이란 제목의 레터에서 유사한 결의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2021년에 출시했던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기테 게이샤의 판매를 마치고 이 커피에 환호했던 빈브라더스 팀과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고객 반응을 보며 왜 그랬을까 회고했던 글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때도 게이샤였네요. 달콤한 고구마와 아카시아 꽃 향에 라임의 산미가 조합된 특별한 커피였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맛있는 커피였습니다. 이 커피가 가진 새로움에 홀려서(?) 정작 다수 고객에게 닿지 못 한게 아닐까 반성했었지만요.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기테 게이샤 소개 내용
다가오는 3월에는 오랜만에 새로운 게이샤를 출시합니다. 콜롬비아 엘 오브라헤 농장의 워시드 게이샤예요. 위에 언급한 과테말라 산 안토니오 차기테 농장이나 대만 징롱 농장의 게이샤와 달리 별로 걱정이 안 되는 유형의 커피랄까요. 많이들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되는 커피입니다.
제가 예전에 방문한 브라질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의 모든 농장 중에 과육의 맛이 가장 과일스러웠던 것이 엘 오브라헤 농장의 게이샤였습니다. 과육의 향미가 씨앗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담보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이번에 나올 엘 오브라헤의 게이샤를 다들 어떻게 느끼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엘 오브라헤: 게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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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Derek, 커피하우스 기획자
한 잔의 커피가 사람들을 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좋아하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반짝이는 대화 속에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구름빠빠: 로스팅된 원두를 구매해서 먹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요즘 구입처의 원두 가격 인상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피 가격의 상승 기사를 보고 대충 상황만 알았는데 오늘의 레터를 통해 커피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고민이 얼마나 깊을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커피를 판매, 구매하기를 만족할 수 있는 날이 지속되어 커피 한 잔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